세 종류의 사람들

Author
GloriaDios GloriaDios
Date
2020-06-16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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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종류의 사람들’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남여노소, 인종불문, 종교불문, 국적불문하고 세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는 세상사람들, 하나님을 알면서도 아직까지 두 마음을 품어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김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는 자들, 삶의 목적이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자들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고, 하나님과의 관계성 속에 살아가야 할 관점에서 그러하다.

1.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는 세상사람들

이 범주에는 종교를 가지지 않은 사람들과 모든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다 포함한다. 아무리 지위가 높고, 부하고, 총명하며, 선량해도 그들은 자기들이 어디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자들이요. 허망한 자들이다.

로마서 1:21에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라고 하였다.

그들은 아담의 타락한 본성에서 나오는 죄로 인해 “온갖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 수군수군하는 자, 비방하는 자, 증오하는 자, 교만, 능욕, 악을 도모하는 자, 부모를 거역하는 자, 우매한 자, 배역하는 자, 무정한 자, 무자비한 자”(롬 1:28-31)들로 살면서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들이다.

그들의 최대 관심은 자신과 자신의 자녀들에게 있고, 육에 속한 세상에서 잘되고 형통하며 건강한 데 있다. 세상 사람들도 존귀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태어났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멸망하는 짐승과 같은 것이다. 시편 49:12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하지 못함이여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영원한 세상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는 멸망하는 짐승과 같아서 불쌍한 영혼들이며, 그러하기에 전도의 대상이다.

이들은 아직도 이방인의 뜰에 머무는 자들이요, 성소의 뜰(회개)로 이끌어 와야 할 자들이다. 하나님은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신다(요 3:16).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그의 아들을 보내셨고(요 3:16), 먼저 구속받은 우리로 하여금 땅끝까지 그 복음의 증인으로 부르셨고 파송하신다(행 1:8).

2. 하나님을 알면서도 아직까지 두 마음을 품어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김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는 자들

이들은 애굽에서 구출되고 종의 신분에서 해방된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아직도 “두 마음을 품다”라는 뜻을 가진 광야에서 방황하고 있는 자들이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으로서 하나님만을 섬겨야 함에도 그들의 육신에 속한 죄성이 아직 죽지 않아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하나님께 순종치 않고,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기는 자들이다.

이들은 대부분이 죄사함의 물세례를 받은 자들과, 성령세례를 받았어도 아직까지 죄에 속한 사망의 법을 이기지 못해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해 하나님의 법을 온전히 따르지 못하고 죄의 법을 따르는 사람들이다(롬 7:17-25).

이들에게 가장 힘들면서도 가장 요구되는 것이 자신의 뜻을 굴복시키는 자아부인과 자아죽음의 과정이다. 이를 세분하면, 자아부인/자아포기/자아굴복/자아죽음의 과정이다.

여기에 바울사도가 그러했던 것같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는 고백과 같은 아직도 죽지 않은 내 자아의 혼적 갈등이 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자기 생각의 견고함이 가로막고 있다(고후 10:5).

반드시 넘어야 할 이 자아죽음과 생명의 성령의 법을 따르며 하나님만을 사랑해야 할 이 영적 훈련의 여정 가운데 수많은 사람들이 그 자아죽음과 죄의 법을 정복함에 좌절하여 요단강을 건너지 못하고, 광야를 헤매고 있다.

이는 열 정탐꾼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쓰러진 것과 같다. 결국 양심과 타협하고 자기 합리화를 통해 주님과 친밀함이 없는 그저 교회생활을 하고 있다.

뜰(회개)을 상징하는 세상을 떠나 성소를 상징하는 교회로 들어왔으나, 다시 세상으로 나가 다시 뜰(회개)을 거쳐 성소로 들어오고 또 나가는 전철을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중 그 중에 많은 수는 더이상 회개가 없는 종교생활에 머물고 있음이 오늘날 교회의 현실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부르심의 궁극적인 목적을 발견하지 못한 자들이며, 그러므로 하나님을 온전히 영화롭게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대부분은 목회자와 일반 신자와 다름이 없이 궁극적인 사명을 발견하지 못하고 일반적인 사명의 범주에 머물고 만다.

왜냐하면 자신의 굴복이 없어 하나님께로 오는 비전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궁극적인 사명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비전과 음성으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사 6:8).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3. 삶의 목적이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자들이다.

이들은 거듭나고 자아가 굴복되고,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한 사람들(롬 8:2)로서 죄에 죽고 의에 대해 사는 사람들(벧전 2:24)이며,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받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다(롬 8:14).

이들은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이 하나님과 그의 약속을 온전히 믿고 순종하는자들로서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 안으로 들어가는 자들이다.

그것이 애굽에서 나오고 광야를 거친 자들이라면, 그들은 다음 세대를 이끌 영적 장군들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완전한 믿음/즉각적인 순종/온전한 희생/오래 참는 인내의 과정을 견뎌오고 거친 남은 자들인 동시에 ‘감히 정복할 수 없는’ 이기는 자의 표상이다.

그들은 이미 자신의 삶의 목표와 방향을 뒤로 던져버렸고, 하나님이 부르신 그 궁극적 사명과 비전을 위해 자기의 삶과 생명까지도 바친 자들이다.

그들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마 6:33)들이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그를 기쁘시게 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는 목적으로 사는 사람들이다(고후 1:20).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라는 고백을 갖고 있는 자들이며, “나의 달려 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려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도 조금도 귀하게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24)라는 궁극적 사명에 서 있는 자들이다.

그들은 지성소 영광의 영역에 들어가는 왕같은 제사장(대제사장)들(벧전 2:9)이며, 마지막 때인 계시록 시대에 남은 자들을 ‘감히 정복할 수 없는’ 신부의 군대/이기는 자의 무리로 준비시켜 마지막 대부흥과 열방대추수에 참예케 할 자들이다.

그들은 죄와 싸우되 피흘리기까지 하는 자들이요, 충성하되 죽기까지 충성하는 자들로서 생명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고, 그들의 사령관은 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서 승리가 약속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삶은 확정되었고, 그들은 세상에 대하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선지자들이며, 그들은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그와의 친교를 가장 우선으로 중요시 하는 하나님의 친구들이다.

“이에 경에 이른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약 2:23).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 15:14).

#나는야 친구 되신 하나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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