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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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와 복음 회개와 복음
Date
2019-08-07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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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 아니다"

(겔 18:23-26)

요즘처럼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교리가 도전받는 때도 없는 것같습니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교리를 주장할만한 구절들은 성경 곳곳에 나타납니다.

로마서 1:17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 2:16에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받을 육체가 없느니라”하였습니다.

이 두 구절을 보면 의롭게 되는 것, 구원을 받는 것이 오직 믿기만 하면 되는 것같습니다. 특별히 한번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교리는 견인의 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사람은 어떻게 되더라도 끝까지 그 구원을 보장하고, 지키신다는 교리입니다.

에베소서 2:8의 말씀이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씀의 근거를 너무나도 잘 확증시킵니다. “너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믿음으로 이미 구원을 얻었다. 우리의 공로나 행위가 아니다. 하나님의 선물로 받았다. 이런 말씀과 교리를 원론적으로만 본다면, 한번 구원받은 사람은 그 이후에 어떠하든지 영원히 구원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때부터 지금의 구원파같은 단체들이 나타났습니다.

니골라 당입니다.

계 2:6 "오직 네(에베소교회)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1. 이방인으로서, 유대교로 개종했다가 다시 기독교로 개종한 자. 예루살렘 교회에서 선출된 일곱 집사 중 하나(행 6:5).
2. 기독교 초기의 교회들에 의해 니골라당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음.
3. 이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자유를 육신을 위한 기회로 삼음으로 기독교의 교리를 잘못 오용하여 육신의 죄악을 조장하게 하였음(갈 5:13)

니골라당의 사상

1. 인간의 육신은 근본적으로 악하다.
2. 인간의 영혼은 육신의 행위와는 아무 상관없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된다
3. 인간의 구원에 육체는 중요치 않다.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에 육체가 짓는 죄는 정죄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4.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는 자유가 주어져 있다.

믿는 그 순간(구원받은 시간)을 강조하며, 그 이후로는 어떠한 죄도 없이 의로운 상태에 들어갔으므로 올바른 믿음을 가진 인간이라면, 더 이상 죄의식을 느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칩니다.

이같은 교리가 악한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교묘히 죄와 타협할 수 있는 편안한 통로를 갖게 한다는 데 있습니다. 성도는 세상과 구별되라는 것이 하나님의 바라심인데, 세상과 타협할 수 있는 길을 자유롭게 열어주게 되니 그 본질이 마귀의 사상인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은 의롭고 거룩한 자가 들어가는 곳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 그의 신부들을 데리고 갑니다.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도 죄를 짓고 세상과 짝하는 사람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구원과 거룩함이 믿는다고 해서 한꺼번에 무조건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진리를 뒷받침할 많은 성경 구절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에스겔 18:23-26의 말씀입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공의에서 떠나 범죄하고 악인이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대로 행하면 살겠느냐 그가 행한 공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범한 허물과 그 지은 죄로 죽으리라. 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하지 아니하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들을지어다 내 길이 어찌 공평하지 아니하냐 너희 길이 공평하지 아니한 것이 아니냐 만일 의인이 그 공의를 떠나 죄악을 행하고 그로 말미암아 죽으면 그 행한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는 것이요”라 하였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는 말을 한 바울사도가 빌립보서 2:12에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후서 3:14에는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하였습니다. .

거룩함을 지속적으로 이루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우리가 계속해서 하나님 은혜를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속적으로 거룩함을 추구하거 나 구원을 끝까지 지킬 필요도 없이, 거룩함과 구원이 무조건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주장만큼 위험한 생각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신분적으로 구원받은 자가 되었다. 구원으로 들어왔다는 말이지, 성취되지는 않은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얼마든지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칠 수 있고, 구원을 잃어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칭의(Justification)나 성화(Sanctification)나 최종적 구원(Final Salvation) 중, 그 어떤 것도 무조건적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는 계속 깨어 있어야 하고, 넘어질까 두려워해야 하며 지속적으로 거룩함을 추구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7:1은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라고 하였으며, 시편 2;11에는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전서 1:17은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고 명령합니다.

히브리서 12:28에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악인의 특징 중 하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 행함이 없는 믿음으로는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야고보서 2:14에 “내 형제들아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17에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죽은 믿음이 구원할 수 없고, 행함이 따르지 않는 믿음으로 죄나 지옥을 피할 수 없습니다.

성도들을 향한 이런 경고의 말씀은 성경 모든 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칭의(Justification)나 성화(Sanctification)가 무조건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말입니다!

2. 한번 믿었다고 해서 무조건적이고도 변치 않는 의로움을 가지게 된다는 것은 가장 위험하고 치명적인 오류입니다.

만약 어떤 신자가 한번 의롭다 함을 받은 후에, 계속해서 죄를 지어도 정죄함을 받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법이 폐지되었다는 뜻이 됩니다. 그가 한번 믿었다는 이유로, 하나님의 법에 따른 형벌이 영원히 그에게서 효력을 나타내지 못하게 된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러면 그에게는 하나님의 법이 아무 소용없게 됩니다. 처벌할 수 없는 법은 법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죄를 짓더라도 그를 심판할 법이 영원히 폐지되었다면, 그 사람에게는 그 법이 더 이상 법이 아닌 게 됩니다.

신자는 한번 믿었다는 이유로 영원히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사실을 증명하는 것 중에 하나는 모든 사람들이 죄를 지으면 자기 양심에 가책을 받게 됩니다.

챨스 피니는 "우리 양심이 우리를 책망하는데 하물며 우리 양심보다 크신 하나님께서 책망하시지 않겠습니까? 요한일서 3:20에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거든 하물며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일까 보냐 라고 하였습니다"라고 설교하였습니다.

한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이 아닌 것은, 모든 성경에서 나온 경고, 책망, 권면의 말씀 등, 성경에서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통해 최종적인 구원을 얻는 조건으로 끝까지 거룩함을 이루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번 믿었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나 영원토록 거룩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성화된 만큼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들이 한번 믿었다고 해서 이미 완전하고 무조건적이고도 영원히 거룩하게 된 것이며 이미 최종적 구원을 얻었다면 왜 그토록 많은 성경 말씀에서 구원을 잃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겠습니까? 한번 믿었다고 해서 절대로 변치않게 의로워졌다면 왜 구원받기 위해서는 끝까지 인내해야 한다고 말씀하시겠습니까?

한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이 아닌 것은, 그들의 믿음이 진리에서 나온 것이라기보다 감정적으로 그렇게 믿고 싶어하는 성향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번 구원받은 사람도 그가 실족하게 되고 최종적으로 실족한 상태에서 죽게 되면, 믿음을 배반하면, 자살하면, 하나님을 부인하고 죽으면, 그의 구원을 잃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건강을 약속하셨을 때, 우리는 하나님이 정하신 자연적인 법칙을 따른다는 조건하에서 건강을 선물로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건강을 지키려는 자의 건강을 지켜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장수를 약속하시면 우리는 하나님이 정한 삶의 법칙을 따라야 오래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살려고 노력하는 자를 살게 해 주십니다.

이것은 영적인 축복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천국은 감추인 보화를 발견하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신자들의 신앙심이 깊어지는 것은 자신이 더 깊은 신앙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에 비례합니다. 그들의 신실함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지켜주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신실한 자를 항상 살펴보시며 그들이 넘어지지 않도록 도우십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자신의 자유의지를 가지고 스스로 깨어 있으려고 노력하고 신실함을 가지려고 애쓰는 만큼 그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견인의 교리(Perseverance of the Saints)는 비성경적 주장입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견인의 교리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한번 믿었다고 해서 그것이 무조건적으로 의롭다함의 상태로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닙니다. 대신에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끝까지 순종하면서 그 믿음을 지켜나가야 합니다.

종합하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어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의롭고 거룩하게 살아야 구원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인 줄 알고 거룩한 삶에 대한 노력과 행함이 없이 평생 교회를 다니면서도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러면 먼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습니까?

첫째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입니다.

사도행전 2:21에 기록된 대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 왜냐하면 예수의 이름은 구원의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21에 “아들을 낳으 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였습니다. 어떤 자가 구원을 얻습니까

둘째로, 주의 이름을 믿는 자입니다.

바울사도는 로마서 10:9에서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리”라고 하였습니다.

셋째로, 성령으로 거듭난 자가 구원을 받습니다.

요한복음 3:5에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나라에 들어 갈 수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자가 구원을 받습니까?

넷째로, 구원에 이르기까지 거듭난 사람으로서 믿음의 행함인 변화된 삶을 지속적으로 살고,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자신을 구별하여 거룩한 삶을 사는 자가 구원을 받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베드로후서 3:11-12에서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고 하였습니다.

단지 예수의 이름을 부르고 교회에 출석하는 것으로 구원이 보장되지 않는 것입니다. 받은 구원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날마다 자라가며, 죄 를 멀리하고 매일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고 그와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의 정결하고 거룩한 신부로서 기름을 준비하고, 세상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넓은 길을 가지만,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버리고 날마다
좁은 길,진리의 길로 걸어가는 자가 구원을 얻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의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면서도 믿음에 행함이 따라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변화의 삶을 살 때, 그 구원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구원받는 믿음을 요약하면,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입니다. 예수의 이름을 믿는 자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입니다. 지속적으로 성령과 동행하며 변화된 삶을 살아 나아가
는 자가 구원을 받습니다. 그냥 주여 주여 하는 자는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오직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주를 주시라 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주님은 마지막 때에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와서 주여 주여 부르나 주님은 그들을 알지 못한다고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큰 교회에 다니는 안수집사님이 심각하게 자신의 구원에 대해 문의한 적이 있습니다.

그동안 크게 도전을 받지 않았는데 제 설교를 들으면서 양심이 찔렸는지, 물어 보지도 않았는데, 자신은 20년 동안 교회를 다니고 예수님을 믿으니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죄에서 떠나지 못하고 괴로운 일이 있으면, 술에 취해 기름통을 들고 들어 와 온 가족을 다 불태워 죽이겠다고 해 가족들이 피신하는 일들이 종종 있는 것입니다.

구원에 대한 확신이 뚜렷하다면, 저에게 물을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제가 성령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5:16에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 하리라”고 하였습니다.성령을 받고 지속적으로 성령 안에 거해야 죄악의 유혹을 이기고 거룩한 삶을 살아 구원을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3:5절에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세운 교회 중에 고린도 교회는 많은 문제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복음을 받아 들이고 예수를 믿는다면서도 우상 숭배와 음행과 분쟁과 법정 소송과 또 다른 여러 가지 문제점들과 악한 행동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고린도전서 6:8-10에서 고린도교회를 향해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저는 너희 형제로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
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한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참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다닌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죄에서 떠나
지 않고 불의를 행하고 육체의 일에서 떠나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지금 교회 다니는 사람들 중에 당장 죽으면, 구원받지 못할 사람들이 많습니다.

진실로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 구원받은 성도요, 하나님의 나라 백성입니다. 갈라디아서 5:24에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 속한 구원의 백성들은 믿기 전에 좋아하던 세상의 것들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냥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씀이 자동적으로 구원을 보장해 주지 못함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믿음이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믿음입니까?

첫째, 온전치 못한 믿음은 구원받지 못합니다.

온전치 못한 믿음이란 믿음의 대상이나 믿음의 개념에 대한 정립이 없이 그냥 믿는 것처럼 생각하는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2:2은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종교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나가서 기도하면 마음의 안정을 얻고, 또 어려울 때, 하나님이 도와 주시고 병고침을 받고 축복을 받는다는 것을 믿는 그런 믿음이 아닙니다.

둘째로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믿음은 완전치 못한 믿음입니다.

빌립보서 2:12에 기록되기를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하였습니다. 구원을 이루라는 말은 구원받기까지 믿음을 지키라는 말입니다. 구원을 받기에 완전치 못한 믿음은 열매 맺지 못하는 나뭇가지와 같은 믿음입니다.

주님은 요한복음 15:2에서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하여 버리신다고 하셨습니다. 교회에 오래 나오는 것같으나 아무 열매를 맺지 못하는 신앙생활은 산 것같으나 죽은 마른가지로서 결국 잘라지기 때문에 이러한 열매 맺지 못하는 믿음은 완전치 못한 믿음으로서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그 당시 습관적인 종교생활을 하는 제사장과 백성들의 장로들에게 마태복음 21:43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완전치 못한 믿음은 쭉정이같은 믿음입니다. 알곡과 쭉정이는 추수 때에 판가름이 납니다.알곡은 거두어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불에 들어갈 것입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행함
이 없는 믿음도 역시 쭉정이 같이 완전치 못한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셋째로, 미혹된 믿음은 구원받지 못합니다

성경은 마지막 때에 많은 사람들이 미혹의 영에 사로잡혀 믿음에서 떠날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4:1에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하였습니다. 베드로후서 2:14에 기록된 굳세지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7에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미혹의 영과 불법의 비밀에 빠지지 않기 위해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에 굳게 서야 합니다. 신천지 같은 이단에 빠지거나 카롤릭과의 연합 등의 배도가 이러한 미혹된 믿음의 범주에 속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무엇보다도 믿음의 결국은 영혼구원입니다(벧전 1:9). “The goal of faith is the salvation of the souls.” 그런데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 믿음과 구원을 선물로 받았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구원이 보장되었고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디모데전서 6;12에 기록된 대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영생을 취하기를 힘씁시다. 히브리서 10:39에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구원의 믿음과 진리에 굳게 서기 위해 항상 스스로 믿음에 있는가 자신을 시험하고 확증하여 받은 구원을 끝까지 지키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킹덤 빌더즈 전두승 목사
L.A 글로리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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