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근한 자들은 누구? 교회안에 있는 ‘미지근한’ 자들에 임할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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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와 복음 회개와 복음
Date
2019-07-05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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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요한계시록 3:15-16)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주님의 메시지다.

차가운 것과 뜨거운 것은 극과 극이다.

그래서 만약 둘 중 하나가 진리라면,
다른 하나는 그 진리와 대척점에 있는
비진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둘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어중간하여 미지근한 상태를
주님은 오히려 더 책망하시며
심판하실 거라고 말씀한다.

왜 그럴까?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아니한 자들의
상태에 대해 다음 구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계시록 3:17)

여기서 알 수 있는 미지근한 자들의 특징은..

불신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들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자부한다.

이말은
경건한 모양의 외적 행위들이 더해져
스스로 온전한 신앙생활을
�해나가고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자신들은 당연히 주님께 속한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라 생각하고,
교회에서 열심을 내며
주님의 이름으로 신앙생활 한다.

하지만 이들이 하나님께 더 큰 심판을 받는다.

왜일까?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야고보서 3:1)

선생된 자들이
심판받는 이유는 단 하나,
잘못(미혹)된 것을 전했기 때문이다.

이런 자들은
교회안에서 자신의 미혹된 믿음을
어떤식으로든 다른 이들에게 설파한다.

그게 개인적 차원이든, 사역적 차원이든..

그렇게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까지 미혹시켜서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지도록 만든다.

이들은 스스로 자신들이
하나님앞에 거룩하고 정결하다 생각하며
실상은 하나님의 뜻과 다름에도
자기가 만든 하나님 우상을 섬기면서
다른 이들에까지 그걸 가르치고 미혹을 감염시킨다.

교회안에 뿌리내린 미혹의 무서움은..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까지
그 미혹의 거미줄에 걸려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오심이 임박한 이 마지막 ��에...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미지근함이란

육적인 차원에서
세상에 한발, 교회에 한발 담근 채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는
그런 표면적인 의미의 차원을 넘어선다.

그들(미지근한 자들)은...
육적인 차원으로 봐도
세상과 철저히 분리되서
정결해보이는 신앙생활을 한다.

외적으론 아주 경건해 보이지만
실상은 아름답게 포장된 거짓에 미혹되어
그 미혹을 따라 삽니다.

이들 대부분
평화, 연합, 인권, 사랑, 정의 등등..
아주 아름답게 포장된 미사여구를
성령의 뜻이 아닌
자신의 그럴듯한 종교적 기준과 합치시켜
간판은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을 달고 있지만
실상은 자기 의에 기반한 종교적 행위를 내세운다.

그리고선 그런 미혹된 흐름을
다른 이들에게 흘려보낸다.

문제는 본인도 그걸 인식하지 못한 채,
스스로 하나님의 일을 하고
그게 하나님의 뜻이라 착각한다는 것이다.

미혹은 가장 먼저
스스로에 대한 브레이크를 고장내버린다.

즉, 내가 지금 하는 생각이나
내가 품고 있는 마음,
내면에 존재하는 모든 사상적 흐름들과
그에 기반해 나오는 말과 행동들을...
성령안에서 돌아보게 하는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도록 만든다.

그래서
내 생각, 내 판단, 내 기준이
아무렇지 않게 막 튀어나오지만
이미 자정력을 상실해 버렸기에,
그런 것들이 성령안에서 옳은 것들인지
돌아볼 생각은 전혀 없이,
자기 종교적 기준대로 말하고 행동한다.

영적인 차원의
아주 본질적 진리에 관한
문제들을 마주했을 때도..

내 생각, 내 판단, 내 기준,
내안에 내재되어 있는 사상들이 튀어나와,
진리를 대적하는 역할을 함에도,

스스로에 대한 브레이크가 전혀 작동하지 않기에,
본인은 그걸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에 앞장선다.

계시록의 일곱교회 중
책망받고 심판이 예비된 다섯교회를 향한
주님의 메시지를 보면,
대부분 외적인 차원의 타락이 아니라,
내적인 차원, 즉 내면의 타락이 주원인이다.

심지어 에베소 교회의 경우는,
한번 구원받았으니 외적인 타락을 합리화하던
니골라당의 행위까지 미워하였다고 말씀한다.
(계 2:6)

하지만 이들은 결국 영적 타락에 의해
주님께 큰 책망을 받는다...

육적인 타락은
겉으로 드러나니 분별이 비교적 쉽지만,

영적인 타락은 외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기에
분별력이 없으면 스스로도 잘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마지막 때에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다니는 사단이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여 속이려 하는 것이다.

베드로후서 2:22절은 말씀한다.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그들에게 나으니라"

믿는다고 하면서 미지근한 것보다
차라리 불신자로 사는 것이
훗날 똑같이 지옥에 던져진다 해도
덜 고통스럽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의의 도를 안 후에 그걸 저버릴 수 있을까?

미지근한 자들 대부분은
스스로 거룩한 명령을 져버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연히 선줄로 생각하며
잘 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 잘 믿고 있다고 착각하는
치명적인 미혹에 감염되어 버렸기에,
오히려 불신자들보다
더 돌이키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아직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도화지엔
어떤 그림도 새로 그려넣을 수 있지만...

이미 무언가가 채워져서 더럽혀진 종이에는
새로운 그림을 그려넣을 수가 없다.

믿음이 없던 불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은 계속 열려 있다.

그래서 지금도 불신자들에게
복음은 어떤 식으로든 전해지고 있고
그 복음을 받아들임으로써
빛의 자녀가 되는 일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미혹된 길로 나아가는 자들은
스스로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여기기에
돌이켜 회복되기는 쉽지 않다.

결국 이런 자들은 하나님께서 더
가증히 여기시는 것이다.

로마서 1:21-22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하나님을 안다는 말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이다.

이런 자들은 대부분
스스로 지혜 있다 생각하며
하나님을 잘 믿고 온전한줄로 착각한다.

하지만 실상은
하나님께 영광돌리지도 않고,
생각이 미혹(허망=거짓되고 망령)에
사로잡혀 있다.

한번 미혹되어 내면이 장악당하게 되면,
성령의 강권적인 은혜가 임하지 않는 이상
돌이키기가 매우 어렵다...

이들의 시작은
비록 성령으로 시작했을지 모르나,
그 내면이 결국
진리가 아닌 불의가 가득참으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그 미혹을 그대로 내버려두신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데살후 2:11-12)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온갖 가증한 인본주의적 사상이 쏟아지며
정신적 타락을 부추기는 일들이 만연한다.

공통점은 다
광명한 껍데기로 포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영적으로 그 내면을 통찰해본다면,
그 본질적 실체가 얼마나 가증한 것들인지가 드러난다.

"교회일치, 교파일치, 연합"이라는 명목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온갖 잡신들을 교회안에 끌어들인 WCC가
얼마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배도인지...

"남북화해, 한반도 평화"라는 명목을 내세우지만
저 북녁땅의 우상체제가
얼마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체제이고,
그 체제와의 평화가 얼마나 가증한 평화인지...

"성소수자 인권보호, 차별금지"라는 명목으로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불법화시키고
이땅 교회들을 박살내려 하는지...

그외에 페미니즘, 이슬람, 공산주의 등등...
여러 영적인 문제들이 우리 앞에 놓여져 있다.

그런데 많은 교회와 사역자들은
선한 껍데기로 치장된 그 겉모냥만 보고
이걸 진리안에서
영적으로 분별할 생각은 전혀 못하고,
광명한 껍데기에 미혹되서 그대로 끌려가버린다.

그래서 WCC에도 장단점이 있으니
거기 참여했다고 함부로 배도라고
낙인찍지 말라는 참람된 소리를 내뱉는다.

또 북한 우상정권과의 평화를
주님이 주시는 평화로 생각하며
교회에서 대대적인 평화기도회를 연다.

또 동성애자의 (성적)인권을 존중해주자고 하거나...

아니면 이도저도 아닌 뱀소리를 남발하고
반대하는 분들을 은근히 꼰대 취급하거나
자기 종교적 기준을 절대적 잣대로 삼는다.

결국...
먼저 교회가 배도하게 된다는 말씀이
그대로 실현되어지고 있는 것이다.
(데살후 2:3)

이런 진리적 기준의 방향성이 명확한
개인적, 교회적, 국가적, 시대적 차원의
영적 문제가 더욱 도드라지면 질수록...

이걸 마주하는 모든 이들이
그 영적 문제를 대함에 있어서..

자신이 하나님앞에 알곡인지, 쭉정이인지..
온전한 성령의 뜻을 따라 진리의 편에 선 자인지..
아니면 미지근한 자인지..
계속해서 드러나고 가려지게 될 것이다.

어떤 문제에 대해
내 생각을 주장하기 이전에,

그런 내 생각과 판단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정말 맞는지 아닌지를
먼저 묻고 따지는 것이
미혹이 틈탈 여지를 사전에 차단하는 길이다.

그리고 그런 일은
하나님을 향한 경외함이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두운 법.

주님 오심이 가까울수록
광명하게 위장한 미혹은 더욱 극성을 부린다.

주님의 다시 오심은,
성령안에 온전히 거한 자들에겐
기쁜 일이 될 것이고,

그렇지 않고
미혹의 늪에 빠져 있는 미지근한 자들에겐
충격과 공포의 날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지금이
동트기 전, 가장 어두운 새벽처럼 느껴진다.

 

출처 : 좁은 길 가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