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전쟁의 최전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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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와 복음 회개와 복음
Date
2019-02-0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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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전쟁의 최전선 '생각']

- 생각은 생각 그 이상인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분, 모두 한번쯤은 새끼 악마가 사람의 한쪽 귀에서 소근 거리고 다른 쪽 귀에서는 천사가 속삭이는 모습을 보여 주는 만화 장면을 보신 일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단지 만화에 불과한 것일까요, 아니면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실제적인 단면일까요?

이것은 실제로 우리의 생활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러면 악한 영들이 우리에게 속삭일 때 어떻게 말할까요? 들리는 소리로 말할까요? 그런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대개는 생각을 통해서 말합니다.

대부분의 생각은 자발적입니다. 즉 인간이 그 주체입니다. 그러나 때때로, 그리고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자주 생각은 하나님이나 사탄에게서 유래합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 14:26)

여기서 생각은 단순히 생각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생각나게 하시므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즉 이런 경우에 생각은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요 13:2)

이것은 마귀가 가룟 유다 앞에 직접 나타났다면 하고 싶었을 말입니다. 그런데 그는 생각을 주입함으로써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경우 생각은 곧 사탄의 음성입니다. 이처럼 생각은 단순히 우리에게서 발원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하나님 혹은 마귀에게서 발원합니다. 그러므로 생각은 때때로 하나님의 음성이거나 마귀의 음성일 수 있습니다.

- 하나님과 악한 영들은 자주 생각을 통해 인간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을 때처럼 들리는 음성으로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주 드문 일입니다. 하지만 생각을 통해 말씀하시는 일은 매우 흔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영혼에 말씀하시면, 우리는 즉시 그 의미를 이해하게 됩니다. 우리가 침묵의 시간을 가지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영혼에 말씀하시는데, 그는 아무런 말도 없이 직접 우리의 마음속에 그의 생각을 넣어 주십니다. 때때로 그것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생각이기도 합니다.’ - 썬다 싱

‘언어나 다른 지각 전달 수단을 의지할 필요가 없는 경우, 누군가가 가르침을 다른 방식으로 전달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즉 생각 그 자체가 우리 마음에 직접 전달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성령께서 행하시는 사역이다. 성령이 언어를 통하지 않고서 직접 우리의 마음속에 생각 그 자체를 새긴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인간의 마음에 직접 역사하시는 성령은 외적인 표시를 통하여 살아 있는 생각을 전달한다.’ - 찰스 피니

‘하나님은 우리 마음과 생각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주께 구하면 주님께서는 우리 마음 가운데 여러 가지 생각을 심어 주실 것입니다.’ - 플로이드 맥클랑

이것은 매우 성경적인 주장입니다. 우리는 성경 안에서 구체적인 사례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6장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듣고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17)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베드로에게 이 진리를 가르쳐 주셨을까요? 들리는 음성을 통해서였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생각 즉 깨달음을 통해서 이 위대한 진리를 알게 해 주셨습니다. 깨달음이란 예수님께서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이라고 말씀하신 대로 갑작스러운 앎입니다. 그것은 생각의 형태로 옵니다. 베드로는 이런 깨달음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내 아버지시니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깨달음, 계시적인 앎)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를 가르치십니다.

한편, 마귀도 생각을 통해서 인간에게 말합니다. 생각을 통해 인간을 시험하고 넘어뜨립니다. 창세기에 보면 마귀가 처음에는 들리는 음성으로 사람을 유혹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도 그렇게 한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사탄 숭배자나 귀신 들린 자가 아니라면 누가 그 음성을 따르겠습니까? 마귀도 이 사실을 압니다. 그래서 들리는 음성이 아니라 주로 생각을 통해서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우리는 성경 안에서 이에 대한 많은 사례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먼저, 다윗 왕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었습니다.

‘사단이 일어나.. 다윗을 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대상 21:1)

이것은 사단의 책략에 의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사단이 다윗에게 ‘나는 네가 백성들의 수를 계수하기를 원한다’하고 말했겠습니까? 만약 그랬다면 다윗은 경건한 사람이므로 일언지하에 거절했을 것입니다. 사단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그는 다윗의 마음에 ‘나의 군대가 얼마나 많은지 한 번 세어 보아야지’하는 생각을 집어넣었습니다. 다윗은 이것이 자기 생각인 줄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실수한 것입니다.

또 베드로의 경우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칭찬을 받은 직후, 베드로는 예수님의 죽음을 만류했습니다. 베드로는 이것이 주님을 위하는 것이며, 순수하게 자기 생각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생각의 출처가 어디인지를 알고 계셨습니다.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마 16:23)

또한, 가룟 유다도 그 한 가지 예입니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요 13:2)

이처럼 유다의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집어넣은 것은 마귀입니다. 하지만 그가 자기의 이런 생각이 마귀가 주입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까요? 몰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배반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입니다. 그들 역시 헌금을 속이려는 생각이 자기들의 생각인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 생각의 출처를 꿰뚫어 보고 다음과 같이 지적했습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행 5:3)

이상 소개해 드린 사람들의 경우, 그들의 생각은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마귀가 주입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몰랐습니다. 알았더라면 거부했을 것입니다. 몰랐기 때문에 그들은 결국 마귀가 심어 준 생각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닐 앤더슨은 ‘내가 누구인지 이제 알았습니다’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사단의 전략은 그의 생각을 당신의 마음속에 심어 놓고, 그것이 마치 당신 안에서 생겨난 것인 양 믿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일은 성경 안에서 뿐 아니라 우리의 실생활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부터 기도할 때에 예수님이나 베드로처럼 생각의 출처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신 생각에 순복하고 사단이 심어주는 생각을 대적하는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생각을 가볍게 취급하기 쉽습니다. 말은 일단 내뱉으면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크게든 작게든 파장을 일으킵니다. 행동은 더 큰 책임이 요구됩니다. 그러나 생각은 표시도 나지 않고 책임질 필요도 없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말로 다른 사람을 협박한 것과 직접 폭력을 행사한 것, 그리고 한 대 쳤으면 하고 생각한 것을 서로 비교해 보면 생각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생각은 자유다’라고 생각합니다. 생각은 어떻게 하든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이고 매우 잘못된 판단입니다.

막 7:21-23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이처럼 생각은 죄를 짓게 합니다.

롬 8:5-6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이처럼 생각은 생과 사를 좌우합니다. 생각에 단지 마음의 평화와 불안뿐 아니라 죽고 사는 것이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다음과 같이 권면한 것입니다.

잠 4:23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마귀는 잘못된 생각이 얼마나 파괴적인지를 잘 압니다.

그래서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은 생각을 통하여 우리를 끊임없이 시험하고 공격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종 악하고 음란한 생각들로부터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철저히 지켜야 합니다.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가 우리에게 다가와 그릇된 생각들을 심어 줄 때 우리는 즉각 믿는 자에게 주어진 권세를 사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마귀를 대적하고 그 생각을 뿌리쳐야 합니다. 이것이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가 우리를 주관하지 못하게 하는 비결이며, 그들을 이기는 비결입니다. 동시에 이것이 곧 이 땅에서 경건하고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씨앗에 비유했습니다. 씨는 땅에 심기우기 전에는 뿌리가 나지 않습니다. 땅에 심겨야 뿌리가 납니다. 그리고 뿌리가 나기 전에 씨를 옮기는 것은 아주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뿌리가 생기고 시간이 경과하면 점점 더 그것을 제거하는 것이 어려워집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 뿐 아니라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가 주는 생각 역시 일종의 영적인 씨앗입니다. 처음에 이것은 나쁜 생각이지만 단순히 생각일 뿐 욕심은 아닙니다. 그래서 그 자체에 큰 힘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옮기기가 쉽습니다. 단순히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하고 단지 다른 것을 생각하기만 해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생각을 뿌리치지 않고 받아들임으로 생각이 머리에서 마음에 내려오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마음은 밭이기 때문에 뿌리가 돋아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마음으로 파고들어가면서 우리의 마음을 장악하고 생각은 점점 절제하기 힘든 욕심으로 변합니다. 그러면 그것을 물리치기가 어렵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토마스 아 켐피스는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쓴 것입니다.

“시험을 당하고 있을 때는 처음부터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모든 지혜를 기울여서 적이 우리의 마음의 문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다면 적을 훨씬 쉽게 물리칠 수 있으며 처음 문을 두드리자마자 내쫓아 버리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어느 시인은 ‘처음에 항거하라. 때가 늦으면 극복하기 힘들리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악한 생각이 마음속으로 스며들고 다음에는 그에 대한 생생한 생각이 따르며 마침내는 이를 즐기고 악한 행동을 하면서 악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사악한 적은 처음부터 굴복되지 아니하면 조금씩 조금씩 완전히 침입해 들어오는 것입니다. 항거를 게을리 하면 할수록 적은 더더욱 강해지고 사람은 자꾸만 약해져서 마침내 원수에게 지고 마는 것입니다.”

“사망에 이르는 죄조차도 그 최전방은 나의 생각의 영역이라는 것을 숨 쉬는 순간마다 잊지 않게 하옵소서! 1995년, 남가주체안 목사님 교회의 집회 때 어느 미국인 강사님께서, ‘사람의 영적 전쟁의 최전선은 생각의 영역입니다. 그곳에 악한 영의 생각이 들어오면 3초 내로 ’즉시‘ 분별해서 물리쳐야 합니다. 3초가 지나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3초는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라고 하셨던 그 말씀이 이 시간 또 기억나네요. 사단의 체계와 악한 궤휼, 그리고 그 방어법을 폭로하는 이 설교를 그들이 얼마나 싫어할까요! 주님, 이 말씀을 보호하시고 강력히 사용하시옵소서!”

우리는 우리의 대적인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의 전술을 잘 이해하고 간파해야 합니다. 그리고 초기에 이 악령을 대적해야 합니다. 군대에 가면 ‘초전박살’이라는 구호가 여기저기에 써 붙여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영적인 주적인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를 대적할 때도 유효한 말입니다. 시간을 끌지 마십시오. 초전에 박살내십시오. 이것이 가장 손 쉬운 승리의 비결입니다.

- 책 ‘보이지 않는 적 귀신 68p~79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