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감사와 하기 싫은 감사 (살전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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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와 복음 회개와 복음
Date
2018-11-21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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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 년을 돌아보면서 또 지난날들을 되돌아보면서 나의 삶에서 특별히 감사할 것이 무엇인가를 조용히 헤아려 보며 추수감사절을 지켰으면 합니다. 오늘날 감사가 잊혀져가는 세상에서 우리 성도들은 다시 추수감사절을 맞으며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깊은 감사를 드리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을 분류하는데 감사에 대한 태도에 따라 세 가지 종류의 사람들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1. 감사를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감사하는 마음이 별로 없는 그런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부모님의 은혜, 선생님의 은혜, 고국의 은혜, 이런 은혜를 거의 깨닫지 못하고 전혀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감사하는 마음이 별로 없습니다.

로마서 1:21절에 보면,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라고 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안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존중하지도 않고, 감사치도 않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값비싼 차를 타고, 호화로운 저택에서 문명의 이기를 누리며 살아도 감사를 모르는 것입니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고 미련한 마음으로 어두워져서 하나님과 분리된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1-5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여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사도 바울은 말세의 나타나는 사람들의 현상을 예언합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사람들이 개인주의, 이기주의, 향락주의, 돈이면 다 된다는 황금만능주의, 그리고 부도덕주의로 흘러간다고 지적하며, 우리 신앙인들은 그것들에서 돌아서라고 말씀합니다. 동물의 세계를 보면, 동물들도 끼리끼리 모여살고, 짝을 이뤄 새끼를 낳고 기르며, 새끼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 위험하면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는 등 인간과 다를 바 없는 행동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물들은 하나님께 예배하거나 감사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칸트는 “인간 중에는 동물과 같은 사람과 인격적인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본능적인 인간이 있고 거듭난 은혜의 인간이 있다”고 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임에도 불구하고 감사치 못하는 사람들은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감사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2. 조건적으로 감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내가 무엇을 받았기 때문에 감사하는 조건부로 감사하는 사람들입니다. 일이 잘 되고 형통하면 감사하고 잘 안되면 원망하고 낙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애굽에서 해방을 맞아 지도자 모세의 인도를 따라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하여 갑니다.

그들 앞에는 홍해바다가 가로막혀 있고, 뒤에는 바로왕의 애굽군대가 그들을 잡으려고 추적해 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위기 가운데서 아우성을 칠 때,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들은 홍해바다가 갈라지는 기적을 경험하며 바다를 육지같이 건넜습니다. 그들을 추격하여 따라가던 애굽의 전차군단은 홍해바다가 다시 합쳐짐으로 바다 속에서 매장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쁨에 넘쳐 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출15:1, “내가 {창조주}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이렇게 감사 찬송을 부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사흘 동안 마실 물을 얻지 못하고 방황하자 모세를 원망하고 불만을 토로하였습니다. 하나님께 감사의 노래를 부른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불평을 한 것입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 편안한 생활을 할 때는 감사를 하다가, 조금만 어려움과 배고픔이 닥쳐오면 금방 불평과 원망과 낙심하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오직 믿음으로 순종했던 여호수아와 갈렙 만이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드린 감사는 조건적인 감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직장에 들어가면 감사하고, 해고를 당하면 원망하고 낙심합니다. 사업이 잘되면 감사하고, 사업이 안 되면 낙심합니다. 시험에 합격하면 감사하고, 안 되면 낙심을 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얕은 물에서 헤매는 신앙을 가지고 있는 신자입니다. 깊은 신앙의 바다에 들어가지 못하는 신자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돈, 지식, 명예, 건강이 있으면 모든 것이 완전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돈 때문에 죽는 사람이 많고, 건강 때문에 죄 짓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배운 것이 잘못되어 부정에 가담해서 감옥에 가는 사람들을 봅니다. 돈, 지식, 명예, 건강 등이 인간의 삶에 완전한 행복을 주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것이 없다 하더라도 우리가 구원받은 사실과 빛나는 산 소망이 있다는 것을 감사하며, 이 세상보다 더 좋은 나라가 예비된 것을 감사할 줄 아는 신앙을 가져야 참 감사를 아는 사람이라고 믿습니다.

3. 성숙한 감사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성숙한 감사는 초월적인 감사이며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에서는 얻은 것과 잃은 것은 항상 반복됩니다. 장사가 잘 될 때도 있고, 손해를 볼 때도 있고, 건강할 때도 있고, 아플 때도 있는 반복되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잃은 것보다 가진 것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감사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참된 감사가 어디 있습니까? 참된 감사는 생각하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래서 영어의 Think(생각하다)와 Thank(감사하다)라는 말은 어원이 같다고 합니다. 생각이 없으면 감사하지 못합니다. 어느 방향으로 생각하느냐,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감사하게 됩니다. 잃어버린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감사를 못합니다. 내가 얻은 것을 생각하고, 내가 받은 것을 생각하고, 은혜를 생각할 때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이 오십이 넘은 여류작가에게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군대갈 나이가 되어 신체검사를 받는데 몸에 이상이 있음이 발견되었습니다. 진단결과 암이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많은 베스트셀러 책을 내었던 유명한 작가도 병든 아들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매달릴 수 있는 곳은 신앙이요 하나님뿐이었습니다. 어미보다 먼저 가려는 자식을 품에 안고 하나님께 절규했습니다. “하나님, 왜 먼저 데려가십니까? 살아 계시다면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나 하나님은 아무런 말씀이 없이 침묵하였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아들도 죽었습니다. 그런데 장례를 지내고 난 후 그녀는 아들은 잃었지만 귀중한 것을 얻었습니다. 생명은 어느 누구도 어떻게 할 수 없고 하나님의 손에만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도 감사합니다. 아들은 죽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먼저 간 것뿐이며 그곳에서 다시 만날 것입니다.” 그녀는 아들이 죽었어도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귀중한 믿음의 세계를 찾았던 것입니다. 죽음이란 영원한 이별이 아니고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어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소설을 다시 썼습니다. "주여 한 말씀만 하옵소서"란 자서전적 소설을 썼는데, 그 분이 바로 여류작가 박완서란 분입니다. 여러분들은 현재 무엇을 감사하십니까? 감사할 수 있는 조건 속에서는 누구나 다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감사할 수 없는 조건 속에서 감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감사입니다.

부도가 나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감사할 수 있다면, 건강에 문제가 생겨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는데도 감사한다면, 시험에 패스하지 못했는데도 감사할 수 있다면, 이러한 감사가 바로 성숙한 감사입니다. 가장 깊은 은혜의 사람은 즐거우나 괴로우나 성공할 때나 실패할 때나 부요할 때나 가난할 때나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하박국 3:17-18에,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창조주}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라고 선지자는 고백합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발견한 사람은 세상의 것이 다 떠나가더라도 하나님 한분만 떠나가지 않으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며 기뻐할 수가 있고, 세상의 바라던 모든 것이 다 없어져도 하나님 한분만 함께 계신다면 감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처음 미국에 온 청교도들은 어떠한 감사를 했습니까? 102명의 청교도들은 1620년 9월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유럽을 떠나 대서양을 건너 12월에 매사추세츠 플리머스 항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혹심한 추위와 식량부족과 괴혈병으로 48명이 죽고 절반 가량이 살아남았습니다.

그들은 나무를 찍어 통나무집을 짓고 살면서, 인디언들의 도움을 받아 황무지에 옥수수와 곡식을 심어 얼마를 추수할 수 있었습니다. 추수한 보잘것 없는 옥수수와 곡식을 갖다 놓고 그리고 들에 뛰어 다니는 칠면조를 잡아서 그걸 구워놓고 첫 번째 감사절을 드렸습니다.

그들의 감사는 죽지 않고 살아남은 데 대한 감사였고, 건강을 지켜주신데 대한 감사였고, 미지의 땅에서도 신앙의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게 된 것에 대한 감사였고, 역경 속에서 황무지에다 씨를 뿌렸는데도 추수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일 것입니다. 청교도들이 드렸던 첫 추수감사절의 정신은 그들의 삶이 풍요해서가 아니라 고난과 어려움과 고통스런 절박한 환경에서도 감사를 발견하고, 하나님께 감사의 단을 쌓은 것이었습니다.

이 청교도들의 감사의 정신은 미국을 풍요한 나라로 이끌었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삶은 감사가 없는 삶이고, 제일 복된 삶은 범사에 감사하는 삶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삶은 하나님을 가장 영화롭게 하는 삶이고, 그런 삶에 하나님은 놀라운 축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추수감사예배를 드리면서, 다시 한번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겠다고 굳게 다짐하며, 감사의 신앙을 회복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