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살리기 위한 예배와 교회(공감과 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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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와 복음 회개와 복음
Date
2017-11-21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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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상처는 고칠 길이 없고,


네 부상은 치명적이다.


네 소식을 듣는 이들마다,


네가 망한 것을 보고


기뻐서 손뼉을 친다.


너의 계속되는 학대를 받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


(나훔서 3:19)



“[There is] no healing of thy bruise;


thy wound is grievous:


all that hear the bruit of thee


shall clap the hands over thee:


for upon whom hath


not thy wickedness passed continually? ”


(Nahum 3:19 KJV)


1. 가진 것이 많을 때는 다양한 사람들이 주위에서 친구가 되지만 모든 것을 잃었을 때 토사구팽兎死狗烹당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2. 한 사람의 진정한 평가는 뒷모습에서 이루어집니다. 그 사람이 떠나갔을 때, 자리에 없을 때 비로소 그가 누구였는지 드러납니다.

3. 앗수르가 세계를 지배할 때 주위의 많은 나라들은 그들의 동맹이 되려 했지만 그들이 멸망할 때 사람들은 손뼉을 치며 환호했습니다.

4. 이로써 앗수르에 대한 평가는 끝났습니다. 사람들이 주위에 모인다고 자랑하지 마십시오. 썩은 음식에도 파리는 꼬입니다.

5. 많은 교회들이 무너지고 있는 이때, 교회에 대한 평가는 어떻습니까? 안타까움과 동정보다는 무너지는 모습에 환호를 지릅니다.

6. 사회악, 부자들의 놀이터, 종교 마약상 등. 세상이 교회를 보는 시각입니다. 앗수르와 다를 바 없습니다. 비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7. 비호감이 호감으로 바뀌려면 터닝 포인트가 필요합니다. 교회의 터닝 포인트는 공감(sympathy)과 유대(strong connection)입니다.

8.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찾아다니십니다. 차별 없이 가르치시고 고쳐주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십니다. 이것이 공감과 유대입니다.

9. 교회가 다시 교회가 되려면 찾아가야 합니다. 그들의 직장과 가정으로. 모이는 교회가 아닌 삶의 자리로 흩어지는 교회가 필요합니다.

10. 주일날, 그것도 교회에서만 그리스도인인 척 만드는 모든 제도에서 과감히 벗어나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살아내도록 해야 합니다.

11. 주일성수, 십일조, 예배 참석, 교회 봉사가 중요합니까? 아닙니다. 그보다 사람의 생명이 더 중요합니다. 살리는 것이 먼저입니다.

12. 교통사고로 죽어가는 사람에게 법을 지켜라 따져야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살리는 것이 먼저 아닙니까? 사람을 살리기 위해 예배와 교회가 필요하지 예배와 교회를 유지하기 위해 교인들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샬롬.